1971년 전설의 AMG 레이싱카, 현대 기술로 되살아나다

AMG라는 이름 석 자가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각인된 건 1971년 벨기에 스파-프랑코르샹 24시간 레이스에서였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튜닝 업체 AMG가 묵직한 고급 세단 300 SEL을 들고 나타났을 때, 패독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레이스가 끝났을 때 웃은 건 AMG였다. 클래스 우승과 함께 종합 2위. 이 차는 붉은 도장 때문에 ‘로테 자우(Rote Sau)’, 즉 ‘붉은 돼지’라는 별명을 얻었고, AMG 신화의 출발점이 됐다.

전설을 재현하겠다는 미국 부호의 집념

문제는 이 차가 워낙 희귀하다는 점이다. 오리지널 붉은 돼지는 사실상 단 한 대뿐이며,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영구 전시 중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매물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한 미국의 자동차 컬렉터가 선택한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이었다.

의뢰를 받은 곳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에 위치한 S-Klub LA. 이들은 “퓨리스트들은 우리를 싫어할 것”이라는 슬로건을 자랑스럽게 내거는,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파격파’ 코치빌더다. 메르세데스, 포르쉐, 페라리 등 역사적 아이콘들을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하며, 원형 보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W109 껍데기에 W205의 심장을

작업의 베이스가 된 건 W109 세대 300 SEL이다. 차체를 완전히 분해해 맨 철판 상태까지 스트립한 뒤, 오리지널 붉은 돼지를 ‘영감’으로만 삼아 재구성했다. 설계도를 그대로 따른 복원이 아니라, 현대적 재해석에 가깝다.

외관부터 그렇다. 헤드라이트는 LED로 교체됐고, 곳곳에 카본 에어로 파츠가 덧붙었다. 클래식 벤츠의 상징과도 같은 크롬 트림은 거의 모두 제거됐다. 흥미로운 건 헬라(Hella) 보조등에 씌워진 분홍색 돼지 커버다. 장난기 어린 디테일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에 대한 경의는 있되, 엄숙함은 없다.

다운사이징? 출력은 오히려 업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파워트레인이다. 오리지널 붉은 돼지에는 6.8리터 자연흡기 V8이 탑재돼 428마력을 뿜어냈다. 반면 S-Klub LA의 레플리카에는 W205 세대 C 63 S AMG에서 적출한 4.0리터 트윈터보 V8이 들어갔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출력은 510마력으로 오히려 늘었다.

실내 역시 젊은 ‘장기 기증자’의 흔적이 역력하다. 계기판과 센터콘솔 전체가 C 63 S에서 왔다. 여기에 버킷 시트, 4점식 레이싱 하네스, 롤케이지가 더해지며 본격적인 트랙 머신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결정타는 스티어링 휠이다. 메르세데스-AMG 원(One) 하이퍼카에서 영감을 받은 사각형 디자인으로, 1970년대 차체와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강렬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성역인가, 걸작인가

붉은 돼지는 AMG에게 일종의 성역이다. 창업자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히트(Hans Werner Aufrecht)와 에르하르트 멜허(Erhard Melcher)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바로 그 차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를 현대식으로 뜯어고친다는 건 일부에게는 불경에 가까운 행위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오리지널 붉은 돼지 자체가 당대의 파격이었다. 고급 리무진을 레이싱카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1970년대 기준으로는 정신 나간 짓이었다. 그 도전 정신을 계승한다면, S-Klub LA의 시도 역시 붉은 돼지 정신에 부합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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