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Jaguar)가 브랜드 재정의에 여념이 없는 동안, 독일 크레펠트에 자리한 튜너 아르덴(Arden)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반대쪽을 향해 걷고 있다. 재규어 전문 튜너로 1972년 창립한 아르덴이 내놓은 ‘AJ 23 RS’ 최신 사양은 브랜드 본체가 역사의 서랍 속으로 밀어 넣은 그 엔진, 즉 F-타입(F-Type) P575의 5.0리터 슈퍼차저 V8을 재료로 삼는다. 재규어의 마지막 V8을 가장 충실하게 마무리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업데이트의 핵심은 인터쿨러 시스템 전면 재설계와 엔진 제어 장치 재조정이다. 도로용 일반 사양은 출력이 기존 575마력에서 650마력으로 올라가고 최대 토크는 약 850Nm에 이른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아르덴이 강조하는 변화는 중간 가속 영역의 즉각적인 반응과 고속 영역의 두터운 가속감이다. 가속계의 숫자보다 운전대를 잡은 손과 등받이를 누르는 등이 먼저 알아챈다.
트랙 전용 사양은 703마력, 873Nm까지 올라간다. 서킷과 트랙데이를 겨냥한 구성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차를 더 벼린 결과물이다. 클랩 밸브 가변 배기 시스템은 소음을 지우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역행해 V8 슈퍼차저 특유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조용한 차들이 넘치는 지금, 이 배기음은 희소가치를 지닌다.
섀시도 손봤다. KW와 공동 개발한 전용 코일오버 서스펜션이 무게중심을 낮추고 코너링 응답성을 예리하게 다듬는다. 제동 성능도 강화했는데, 아르덴이 내린 선택이 눈길을 끈다. 고가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대신 맞춤 제작 스틸 브레이크를 채택했다. 제동력은 순정보다 높이고, 유지보수 부담은 카본 세라믹 대비 대폭 낮추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고성능 부품이 반드시 가장 비싼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다.
스포트라인 GT 시리즈의 21인치 단조 휠이 네 귀퉁이를 맡는다. 앞바퀴는 9.5×21인치에 265/30 규격, 뒷바퀴는 11×21인치에 305/25 규격으로 맞췄다. 회전 관성을 줄이면서 노면 접지력을 높이는 구성이며, TÜV 인증을 마쳤다. 카본 파이버 프론트 스플리터, 사이드 스커트, 리어 디퓨저, 능동 조절 리어 스포일러가 외관에 공력 목적의 무게를 더한다. 실내는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알루미늄 페달 세트를 기본으로, 가죽·카본 소재 트리밍을 원하는 대로 추가할 수 있다.
아르덴의 행보는 재규어의 현재와 선명하게 갈린다. 재규어 본사는 이미 내연기관 라인업을 정리했다. 아르덴은 반대로 V8과 V12 모델을 계속 손질하고, 이 엔진들을 장기 운용하기 위한 e-퓨얼(e-fuel) 프로젝트까지 가동 중이다. 재규어가 전기차 브랜드로 탈바꿈을 서두르는 시대에, 그 브랜드의 열성 팬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르덴이 더 또렷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