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가 공개한 GT XX 콘셉트는 단순한 디자인 실험이나 홍보용 쇼카를 넘어, AMG가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이 차는 2026년 출시 예정인 AMG GT 4-도어 전기차의 프로토타입 성격을 띠고 있으며, 기존 AMG의 내연기관 슈퍼카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의 고성능 전기차 기술과 디자인을 제시한다.
혁신적인 축류 모터와 파워트레인 구성
GT XX의 핵심 기술 중 하나는 영국 YASA에서 개발한 축류(axial flux) 전기모터 3개를 사용하는 것이다. 기존의 라디얼 플럭스(radial flux) 모터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모터 내부의 회전축과 자석 배열 방식이 다르다. 이로 인해 모터 크기는 기존 대비 약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무게도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출력 밀도는 무려 3배에 달한다.
이러한 모터를 앞바퀴에 1개, 뒷바퀴에 2개 장착해 총출력 1,341마력(1,000kW 이상) 을 실현했다. 이 삼모터 구성은 뒷바퀴에 주로 힘을 실어 강력한 드라이브를 전달하고, 앞바퀴 모터는 주행 안정성과 토크 벡터링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YASA CEO 조르그 미스카(Jӧrg Miska)는 토크 수치가 “수천 뉴턴미터”에 달한다고 말하며, 기존 하이브리드 슈퍼카(예: 페라리 SF90)에서 경험한 토크 벡터링 기술을 한 단계 진화시킨다고 밝혔다.
이처럼 모터 자체의 경량화와 고출력이 가능해지면서, AMG는 전기차에서도 전통적인 내연기관 AMG의 주행 성능과 다이내믹함을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성능 배터리와 초고속 충전 기술
전기 모터의 성능을 뒷받침하는 배터리 역시 기존과 다른 기술이 적용됐다. AMG가 독자 개발한 NCMA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는 실리콘이 함유된 음극 소재를 사용해 에너지 밀도를 높였으며, 각 셀마다 액체 냉각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어 열 관리를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다. 배터리 팩은 차체 하단에 통합되어 무게 중심을 낮추고 충돌 안전성도 강화했다.
이 배터리 시스템은 800V 이상의 고전압을 사용해, 이론상 최대 850kW급 충전이 가능하다. 이는 현재 시중의 가장 빠른 충전기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5분 충전에 약 400km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물론 이런 충전 속도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메르세데스는 유럽 전역에 차세대 초고속 충전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계획을 함께 추진 중이다.
과감한 디자인과 호불호 갈릴 스타일
외관 디자인은 전통적인 AMG와 거리를 둔 실험적인 시도다. 물고기처럼 날렵하면서도 약간은 이질적인 전면부, 스택형 헤드램프, 후방 유리가 없는 쿠페형 루프라인 등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 만한 요소다. 거대한 그릴은 거의 차량 전면 폭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고, 보조등까지 통합된 점도 이례적이다.
측면에는 21인치 대형 에어로 휠이 달렸으며, 휠 스포크는 공력과 브레이크 냉각을 위한 액티브 베인으로 구성됐다. 측면 하단에 장착된 ‘발광 페인트’ 스커트는 전류에 반응해 빛을 내는 기술로, 시각적인 임팩트를 더한다.
후면부는 상대적으로 절제됐으나, 6개의 원형 LED 테일라이트와 액티브 에어브레이크, 카본 파이버 디퓨저 등으로 스포츠카다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특히, 700개 이상의 RGB LED가 내장된 MBUX 플루이드 라이트 패널을 통해 외부와 텍스트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소통하는 점은 기술 시연에 가깝다.
실내는 ‘럭셔리’보다 ‘경량화’와 ‘기능성’ 강조
GT XX의 인테리어는 전통적인 메르세데스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고급 가죽 대신 카본 시트가 적용됐고, 실내 곳곳에는 재활용 소재가 사용됐다. 스티어링 휠은 AMG ONE의 포뮬러 레이싱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디지털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각각 10.25인치, 14인치로 실질적인 양산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센터 콘솔에는 마치 전압 케이블을 연상시키는 오렌지색 조명관이 설치되어 있으며, 금속과 탄소섬유가 혼합된 소재가 사용됐다. 이 모든 것은 ‘경량화’와 ‘미래형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AMG의 전기차 전환과 감성의 딜레마
메르세데스-AMG 최고기술책임자(CTO) 마르쿠스 쉐퍼(Markus Schäfer)는 “하드코어 V8 팬들을 전기차로 이끌기는 쉽지 않다”며, 단순한 전기차를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GT XX 콘셉트와 내년 양산될 모델에는 가상 변속기와 엔진 사운드 시뮬레이션이 도입될 예정이다. 콘셉트 영상에서는 V8 엔진의 저음 그롤 소리와 유사한 가상 사운드가 등장하며, 이는 AMG 특유의 감성을 재현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성능 수치 경쟁을 넘어 ‘전통적인 AMG가 주던 감성적 만족감’을 전기차에서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실험’과 ‘현실’ 사이
GT XX 콘셉트는 아직 완성된 제품이라기보다는 AMG 전기차 전략의 기술적 로드맵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스케치에 가깝다. 과감한 디자인과 최첨단 모터 및 배터리 기술, 그리고 가상 사운드와 인터페이스 등은 AMG가 전기차 시대에 ‘어떻게 생존하고 발전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다만 콘셉트의 일부 요소는 양산형에서 다소 조정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후방 유리의 부재는 현실적인 시야 확보 문제로 수정될 가능성이 크고, LED 라이트 패널 등 일부 과한 기술도 실용성에 맞게 간소화될 것이다.
여전히 내연기관 슈퍼카의 감성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어색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AMG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도기적 과정임은 분명하다. GT XX는 고성능 전기차 개발에 있어서 ‘기술적 가능성’과 ‘감성적 가교’를 동시에 모색하는 과제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